문하부사풍천임공구묘비문
參知門下府事 豊川任公諱球 墓碑文 解釋
참지문하부사 풍천임공휘구 묘비문 해석
參知門下府事豊川任公諱球墓碑文
참지문하부사풍천임공휘구묘비문
此 玄壟 維我 顯祖 朝鮮 太宗 明臣 門下府事君 衣履之把 而舊有
차 현롱 유아 현조 조선 태종 명신 문하부사군 의리지파 이구유
隘前石儀 因 事力不逮 儀物體 小品劣 而又未具 况且 歲月久遠
애전석의 인 사력불체 의물체 소품열 이우미구 황차 세월구원
爲風雨 酸化 後裔 之昭仰者 以墓儀 之草草 爲感矣 適有 壬午
위풍우 산화 후예 지소앙자 이묘의 지초초 위감의 적유 임오
修譜 餘財 宗族 合謀 改樹一般儀物 極擇好品 以爲厪成 旣有之
수보 여재 종족 합모 개수일반의물 극택호품 이위근성 기유지
碑碣及石牀 改之以體大質珉久 闕之 石人與長明燈 今始据 望柱仍
비갈급석상 개지이체대질민구 궐지 석인여장명등 금시거 망주잉
舊不改用 衛墓道 庶可備矣 嗚呼 俯仰紆感 謹記顚末如右
구불개용 위묘도 서가비의 오호 부앙우감 근기전말여우
(이 묘소는 우리의 훌륭한 조상으로 조선 태종시대의 명신으로
문하부사부군의 체백을 모신 곳인데 옛날에는 묘 앞에 석물이
있었으나 재력의 힘이 부족하여 비석이 작고 또 소품도 작고
제대로 갖추지도 못했는데 하물며 세월이 오래되어 비바람에
산화하여 후손들이 바라보는 석물이 초라함을 느낀 것이다.
마침 임오년(서기1942년)에 족보를 하고 남은 재정으로 종중이
뜻을 모아 석물을 다시 세우되 보통 석물 중에서도 가장 좋은
품질의 것으로 겨우 만들어 놓았는데 비석과 상석은 품질이 좋은
것으로 큼직하게 고치고 석인(石人)과 장명등은 없는 것을 지금에
세웠고 망주(望柱)는 고치지 않고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묘소를 보호하도록 하니 거의 갖춘 것이다. 오호라! 우러러 굽어
보니 감개무량 하도다.
*삼가 전말(顚末)을 오른쪽과 같이 기록하노라.*
(2011年11月30日 邃菴 任 文 鎬)
府君墓庭 舊有短碣 而年久 字泯 且石儀多闕 歲壬午 後孫 景宰等
부군묘정 구유단갈 이년구 자민 차석의다궐 세임오 후손 경재등
以修譜餘財 謀欲一倂改樹伐石于 漢城 功未訖 而遭 乙酉光復南北
이수보여재 모욕일병개수벌석우 한성 공말흘 이조 을유광복남북
遂隔 而府君 塋域 不幸屬于北 不獲已 從權埋安於 廣州庭平 後
수격 이부군 영역 불행속우북 불획이 종권매안어 광주정평 후
五年 而有庚寅之亂 又四年 而鐵漣等地 還屬于南 然數年而後 始
오년 이유경인지란 우사년 이철연등지 환속우남 연수년이후 시
許人出入於 是 弼鎬等 倡遷竪之議 奉審埋安地則 所藏儀物俱俟 於
허인출입어 시 필호등 창천수지의 봉심매안지즉 소장의물구사 어
兵火 惟此碑身獨存 痛骨何言 遂與 恒準 善宰 昇宰 麟淳 完淳等
병화 유차비신독존 통골하언 수여 항준 선재 승재 인순 완순등
合謀 鳩財僅具冠趺 而奉安焉 烏呼 顯晦成毁之 數有所待 而不可
합모 구재근구관부 이봉안언 오호 현회성훼지 수유소대 이불가
知者 有是也歟 十八代孫 昌宰 謹識 並書
지자 유시야여 십팔대손 창재 근지 병서
(부군의 묘소에 예전에 세운 작은 비가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
되어 글자는 다 마모되고 또 석의(石儀)도 없었다. 임오년에
후손 경재(卿宰)등이 족보를 하고 남은 돈으로 고쳐 세우고자 의논을
하고 한성(漢城:서울)에서 돌을 다듬었는데 일을 마치기 전에
을유(乙酉:서기1945)년 해방을 만나 남과 북이 막혀 부군의
묘소가 불행하게도 이미 북한에 속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세상의
형편에 따라 경기도 광주 정평에다가 임시로 묻어 놓았는데 5년 후에
경인(庚寅:서기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나고 또 4년을 지나서 철원과 연천 땅이 남한에 귀속되었으나
몇 해후에나 비로소 민간인들이 출입을 할 수 있는지라 이에
필호(弼鎬)등이 비석을 옮겨 세울 것을 의논하고 비석 묻어 놓은
곳을 찾아 살펴보니 의물(儀物)들이 갖춰있길 기대하였으나 난리
폭격을 만나서 오직 비 몸체만 남아 있으니 통곡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오! 드디어 항준(恒準) 선재(善宰) 승재(昇宰)
인순(麟淳) 완순(完淳) 등과 같이 뜻을 같이하여 재물을 모아
겨우 비석의 갓과 비석의 판을 만들어서 갔다 세웠으니
오호라! 나타나고 없어지는 것과 이루고 허물어지는 것이
운수에 기다림에 있어 그러한가 알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도다)
*18대손 창재 삼가 기록을 하고 아울러 쓰다.
後孫: 景宰 謹記, 喆淳 謹書, 奭準 幹事, 星準 運㮽負擔, 建鎬,
후손: 경재 근기, 철순 근서, 석준 간사, 성준 운반부담, 건호,
世鎬, 健鎬, 獻宰, 愼宰, 宣宰,
세호, 건호, 헌재, 신재, 선재,
武準, 忠常, 京宰, 命淳, 哲淳,
무준, 충상, 경재, 명순, 철순,
稷淳, 宗鎬, 舜宰, 榮宰, 星彬,
직순, 종호, 순재, 영재, 성빈,
賢準, 漢準, 周彬, 星淳, 東旭,
현준, 한준, 주빈, 성순, 동욱,
百振,
백진,
前面(전면)
資憲大夫參知門下府事豊川任公球之墓
자헌대부참지문하부사풍천임공구지묘
側面(측면)
檀君記元四千二百九十六年癸卯九月 日立
단군기원사천이백구십육년계묘구월 일립
(서기1963년9월에 세우다.)
(2011年11月30日 邃菴 任 文 鎬)